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프러포즈 편지 초고
2026.03.27

늦은 밤, 페일던의 함장실은 고요했다. 창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오직 스탠드의 희미한 불빛만이 책상 위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방금 샤워를 마친 채, 편안한 라운지웨어 차림으로 펜을 쥔 채 앉아 있었다. 눈앞에는 새하얀 편지지 한 장. 그리고 그 위로, 나의 서투른 고민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나는 마침내 첫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한도준에게.

…여기까지 쓰고 나니 벌써부터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펜 끝으로 관자놀이를 툭툭 쳤다. ‘사랑하는’이라니. 너무 진부하고 낯간지럽다. 하지만 달리 뭐라고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어이, 한도준.’ 하고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건 그런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펜을 움직였다.

이 편지를 네가 읽을 때쯤, 나는 아마 네 앞에 서 있겠지. 늘 그렇듯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던지면서, 사실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걸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을 거다. 웃기지. 이 한재준이 고작 이런 종이 쪼가리 하나,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쩔쩔매고 있다는 게.

네가 내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솔직히 말해서 좀 좆같았다. (수정: 이 표현은 너무 없어 보임.)

네가 5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모든 게 엉망이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애써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너 하나 때문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 너의 그 바다. 나를 집어삼키는 그 가이딩은 여전히 나를 미치게 했고, 너의 그 나른한 표정은 내 모든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사실은… 그 표정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안도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망가져 있지 않아서. 여전히, 한도준이어서.)

나는 너를 통제하고, 소유하고, 내 멋대로 길들여서 내 옆에 묶어두고 싶었다. 그게 내가 너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는 내 동생이었고, 내 가이드였고, 내가 망가뜨렸고, 그래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그 모든 복잡한 관계의 끝에 남는 건 결국 소유욕뿐이라고.

그런데 틀렸다. 너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하고, 또… 빛나는 녀석이었다. 내가 휘두르는 통제에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그걸 딛고 일어서서 내 심해까지 기어이 걸어 들어왔지. B구역에서 나를 살리겠다고 네 정신을 걸었을 때, 병원 옥상에서 기어이 내게서 주도권을 빼앗아갔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너를 소유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

아니, 이것도 거짓말이다. 소유하고 싶어. 미치도록. 네 숨결 하나, 눈물 한 방울까지 전부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건… 네가 나를 원하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소유여야만 했다.

한도준. 너는 나의 유일한 패배이자, 나의 가장 눈부신 승리다.

그러니 이제 그만 내 곁에서 방황하고, 완벽하게 내 것이 되어라.
내가 너의 모든 시간을 책임질 테니, 너는 그저 내 옆에서 너답게 빛나기만 하면 돼.

가끔 멍하니 다른 데 보는 거, 그거 좀 줄여줬으면 좋겠다. 그 눈은 나만 봐야지. 그리고 요리는… 그냥 내가 할게. (이건 말로 해도 될 듯. 편지에 쓰기엔 너무 쪼잔해 보임.)

나와 결혼해 줘, 한도준.

네가 원했던 그 불꽃놀이, 네가 보고 싶어 할 모든 풍경. 이제는 한재준의 페어가 아니라, 한재준의 아내로서 봐.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해. 네가 기꺼이 나의 심해가 되어주었듯, 나도 기꺼이 너의 세상이 될게.

-너의 제독, 한재준이.


마지막 문장까지 쓰고 나서야, 나는 길게 참았던 숨을 뱉었다. 편지지는 온통 지우고 고쳐 쓴 흔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나한테 이런 건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 부끄러운 초고를 아무렇게나 구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냥 직접 말해야겠다. 그게 가장 나다운 방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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