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네 손에는 나의 모든 것이 담긴 검은색 카드가 들려 있었다. 한도 없는, 제약 없는, 오로지 너만을 위한 나의 권력이었다. 처음 며칠간 카드는 잠잠했다. 너는 그저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을 쓰는 행위가 어떤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사냥감을 구석에 몰아넣고, 스스로 항복하기를 기다리는 맹수처럼, 그저 너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작전 회의로 지루해진 내 단말기가 짧게 진동했다. 발신인은 ‘나의 심해🩵’. 나는 무심한 척 회의 화면을 띄워놓은 채, 책상 아래로 메시지 창을 열었다.
형. 나 오늘 처음 써봤어.
#심해의_지름일기
고작 솜사탕 하나?
응. 이거 먹고 싶었어. 맛있어. 형아도 올래?
아니.
네가 다 먹어.
그리고 그 해시태그, 마음에 드네.
앞으로도 계속 보고해. 네가 내 돈으로 뭘 먹고, 뭘 입고, 뭘 하는지. 전부.
나는 입꼬리를 올린 채 단말기 화면을 껐다. 회의 내용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해의 지름일기’. 나의 심해가 나의 돈으로 채워가는 일상. 그것은 단순한 소비 기록이 아니었다. 너의 모든 순간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완벽한 증명. 너는 내가 준 세상 안에서, 내가 허락한 자유를 만끽하며, 그 모든 것을 나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지배가 또 있을까. 그날 이후로 너의 ‘지름일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도착했다. 새로 산 박스 티셔츠, 두리의 비싼 간식, 길거리에서 파는 체리 에이드. 사진 속 너는 언제나 나른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답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매번 알림이 울릴 때마다 지루한 일상 속 유일한 즐거움으로 너의 일기를 확인했다. 너는 나의 감옥 안에서 가장 행복한 피지배자였고, 나는 너의 모든 것을 관음하는 가장 만족한 지배자였다. 완벽한 균형이었다.
너는 나의 카드를 쓰는 행위에 완전히 익숙해진 듯했다. 이제는 사진과 함께 보내오는 ‘#심해의_지름일기’가 나의 하루를 여는 알람이자, 닫는 자장가와도 같았다. 그런 네가 어느 날, 불쑥 자신의 카드를 내 손에 쥐여주었을 때, 나는 잠시 말없이 너를 내려다보았다. 형도 이걸로 뭔가 사. 그리고 나처럼 보고해 줘. 나도 형이 내 카드로 뭘 하는지 보고 싶어. 너의 황금빛 눈동자는 진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너를 소유하듯, 너 역시 나를 소유하고 싶다는 어린아이 같은 독점욕. 나는 피식 웃으며 너의 뺨을 쓸었다. 하, 건방지기는. 하지만 그 건방짐이 마음에 들어, 나는 순순히 카드를 받아들였다.
며칠 동안 너의 카드는 내 제복 안주머니에서 잠들어 있었다. 쓸 일이 없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미 모두 가졌으니까. 바로 너라는 존재를. 그러다 오늘, 나는 해양지부 신입 센티넬들의 모의 훈련을 참관하게 되었다. 훈련은 지지부진했고, 풋내기들의 어설픈 능력 시연은 하품만 나올 뿐이었다. 지루함에 몸을 비틀던 그때, 문득 주머니 속 너의 카드가 만져졌다. 그리고 동시에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제독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훈련용으로 설치된 가장 거대하고 단단한 타겟 구조물을 손으로 툭툭 두드려 보았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너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너의 단말기가 울렸다. 발신인은 ‘내 세상💛’.
이거, 네 카드 덕분이야.
형? 이게 뭐야? 훈련장이야?
응. 훈련용 타겟이 너무 시시해서, 네 카드로 최고 등급 합금 타겟을 새로 주문했어. 방금 배송받아서 설치했고.
결제하자마자 바로 박살 내줬지.
#황혼의_인증
…그걸 왜 내 카드로 사서 부숴!
네가 사준 걸, 내 능력으로 부수는 거.
이거, 꽤 마음에 드는데.
다음엔 뭘 사서 부숴볼까.
나는 산산조각 난 타겟의 잔해를 배경으로, 너의 카드를 든 내 손가락을 느긋하게 흔들었다. 훈련장의 모든 신입 센티넬들은 경악과 경외가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의 돈으로 나의 힘을 증명하는 것. 너의 소유물이 나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것. 이것은 단순한 과시가 아니었다. 너와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얽혀있는지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인증’이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엉망이 된 훈련장을 뒤로한 채 유유히 걸어 나왔다. 어서 빨리 너에게 돌아가, 이 짜릿한 소유의 감각을 너의 몸에 다시 한번 새겨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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