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바른말 고운말 쟁반노래방
2026.03.28

어젯밤의 불꽃놀이가 남긴 빛의 잔상은 꿈속까지 따라와 부서졌다. 나는 네 고른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이 잠들었다가, 창틈으로 스며든 아침 햇살에 먼저 눈을 떴다. 품 안에는 세상모르고 잠든 네가 있었다. 곤히 잠든 얼굴, 살짝 벌어진 입술, 이불을 꾹 쥐고 있는 손가락까지. 모든 것이 어제보다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씨발, 왜 이렇게 예쁘게 굴어. 사람 미치게.

 

…응? 방금 뭐였지.

 

나는 무의식중에 스친 거친 생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쨍그랑! 💥✨

 

허공에서 뜬금없이 나타난 은색 식판이 내 정수리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생각보다 묵직한 충격에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깡!’ 하는 경쾌하고도 어이없는 소리와 함께, 식판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나는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지 못했다. 혹시 네가 잠결에 던진 건가 싶어 너를 내려다봤지만, 너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외부 침입? 아니, 페일던의 보안은 완벽하다. 그렇다면 이건 대체…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어제 내가 보여준 불꽃놀이의 부작용으로 환각이라도 보는 건가. 나는 나뒹그러진 식판을 빤히 쳐다봤다. 지극히 평범하고, 군용으로 보이는 스테인리스 식판. 대체 이게 어디서 날아온 거냔 말이다. 나는 일단 잠든 네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식판을 집어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별 미친 현상도 다 보겠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나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털어내고, 다시 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든 너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추자, 네가 으응… 하고 작게 칭얼거리며 내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또다시 입가가 멋대로 올라갔다. 나는 너의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더 자. 아직 시간 많아.

 

너는 내 목소리에 안심한 듯 다시 고른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문득 어제 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빠한테 엄마만 보여주지 말고 세아도 보여달라고 떼쓰자.’ 그 말을 떠올리자 웃음이 났다. 하, 같잖고 귀여운 새끼. 내 모든 게 네 것인데, 뭘 더 보여달라고 떼를 써.

💖✨ 챙그랑! 쿠당탕! ✨💖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핑크색 하트 모양에 레이스까지 달린, 정신 나간 디자인의 쟁반이 내 뒤통수를 강타했다. 아까보다 충격은 덜했지만, 정신적인 대미지는 훨씬 컸다.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쟁반은 침대 헤드에 한 번 더 부딪힌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건 환각이 아니다. 명백한 물리적 현상이다. 두 번. 정확히 두 번, 내가 속으로 거친 생각을 했을 때 머리 위로 쟁반이 떨어졌다. 첫 번째는 ‘씨발’, 두 번째는 ‘같잖은 새끼’. …설마. 아니, 말도 안 돼.

 

나는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일부러 머릿속에 온갖 상스러운 단어들을 떠올려봤다. 빌런 새끼들, 망할 해양지부, 좆같은…

💥✨ 콰르르르릉!! 쨍그랑! 땡! ✨💥

 

내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갖 종류의 쟁반들이 폭포수처럼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은색 식판, 핑크색 하트 쟁반, 나무로 된 우동 쟁반, 심지어는 어딘가 연회장에서 훔쳐 온 것 같은 고급스러운 금테 쟁반까지. 쟁반 소나기는 짧지만 강렬하게 내 머리 위를 두들기고 바닥으로 흩어졌다. 그 소리에 결국 네가 부스스 눈을 떴다. 너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침대 주위에 널브러진 쟁반 더미와 그 한가운데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재준이 생각하는 도준과의 관계 : …내 세상에 이런 버그가 발생할 리가 없는데.
💬재준의 속마음 : …뭐지. 이 지랄 맞은 상황은 대체 뭐지?
📱재준의 비밀 메모장 : 25.08.30. 08:16. 긴급 메모: 원인 불명의 쟁반 투하 현상 발생. 트리거는… ‘예쁘지 않은 말’… 인 것 같다. …씨ㅂ… 아니, 이런 고운 말을 써야 하나. 이건 대체 무슨 저주인가.

 


 

네가 잠이 덜 깬 얼굴로 눈을 비비며 이 기상천외한 풍경을 쳐다봤다. 널브러진 쟁반 더미와 그 한가운데에 굳어있는 나. 그 어리둥절한 황금색 눈동자가 나에게로 향하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했다. 너를, 그리고 네 안의 세아를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아. 일어났구나, 나의 아름다운 심해. 좋은 아침이야. 이건… 뭐랄까. 서프라이즈 이벤트 같은 거야.

 

나는 최대한 태연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쥐어짰다. 머릿속으로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욕설 금지. 비속어 금지.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도 금지. ‘젠장’, ‘빌어먹을’, ‘좆됐다’ 같은 단어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 위가 서늘해졌다. 나는 침대 주위에 흩어진 쟁반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불꽃놀이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지. 소리와 형태가 있는 불꽃놀이. 꽤나… 아방가르드하지 않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너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네가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자, 나는 선수를 쳤다.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 분명 어딘가에서 실수가 터질 것 같았다.

 

피곤할 텐데, 조금 더 자도 괜찮아. 내가 이… 예술 작품들을 얼른 치울 테니. 우리 도준이는 신경 쓰지 말고. 응? 착하지.

 

나는 ‘착하지’라는 말을 내뱉고 스스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얌전히 있어’ 정도로 끝냈을 말이었다. 하지만 쟁반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다. 이 빌어먹을… 아니, 이 지극정성인 현상은 대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건지. 나는 바닥에 떨어진 핑크색 하트 쟁반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쨍- 하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나는 너의 시선이 쟁반에 닿는 것을 보고, 얼른 너의 뺨을 감싸 쥐어 시선을 다시 나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최대한 감미롭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평생 써본 적 없는 다정한 톤으로 속삭였다.

 

신경 쓰지 마. 오직 나만 봐.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나의 보석. 나의… 사랑.

 

스스로도 견디기 힘든 닭살 돋는 멘트를 날리며 너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제발, 제발 이 정도면 넘어가 줘.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너는 여전히 잠이 덜 깬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 등 뒤, 침대 헤드에 위태롭게 걸쳐진 나무 쟁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젠장. 저건 또 언제 거기에.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몸을 돌려 그것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문밖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낑낑대던 두리가 참지 못하고 문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왕! 왕! 하고 짖는 소리가 함장실을 울렸다. 아, 저 시끄러운 강아지… 님.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 WAGRANG CHANG CHANG! 🔔⚜️

 

내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아예 교회의 종이라도 떼어 온 듯한 거대한 황동 쟁반이 천장에서부터 빙글빙글 돌며 내려와 내 머리 바로 옆 베개 위로 떨어졌다. ‘쿠웅!’ 하는 둔탁한 굉음과 함께, 침대가 살짝 휘청였다. 쟁반 위에는 ‘항상 말을 예쁘게 하세요’ 라고 고딕체로 새겨져 있기까지 했다.

 

나는 그 문구를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너는 이제 잠이 완전히 깬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와 쟁반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표정은 더 이상 어리둥절함이 아니었다. 명백한 호기심과… 희미한 웃음기마저 어려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입을 열었다.

 

…방금 건… 모닝콜이야. 아주… 클래식하지.

 

❤️‍🔥재준이 생각하는 도준과의 관계 : 내 완벽한 세계의 유일한 버그, 그리고 그 버그를 목격한 단 한 사람.
💬재준의 속마음 : …모닝콜?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지? 차라리 빌런 군단이 쳐들어왔다고 하는 게 더 설득력 있겠다.
📱재준의 비밀 메모장 : 25.08.30. 08:26. 저주 분석: 1. 욕설, 비속어, 경멸적 사고에 반응. 2. 쟁반의 종류와 강도는 '예쁘지 않은 말'의 수위에 비례하는 듯. 3. 문구까지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지능이 있는 현상 같다. …매우 불쾌하다.

 


 

나는 네 걱정스러운 물음에 잠시 숨을 멈췄다. 괜찮냐고? 머리 위로 온갖 종류의 쟁반이 떨어지는 이 상황이 괜찮아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아니, 좆같아’ 라고 대답했다간 함선 주방의 모든 식기가 이곳으로 소환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황급히 힘을 풀었다. 험한 생각도 금물이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베개 위에 놓인 거대한 황동 쟁반을 슬쩍 밀어내며, 너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럼, 당연히 괜찮지. 나의 소중한 보물. 네가 곁에 있는데 내가 왜 안 괜찮겠어. 이건 그냥… 아침을 알리는 활기찬 팡파르 같은 거야.

 

나는 내 입에서 나온 낯간지러운 단어들에 스스로 경악했다. 팡파르라니. 차라리 포격 소음이라고 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쟁반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너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네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영악하고 사랑스러운… 아니, 이 지혜롭고 아름다운 사람아. 나는 속으로 말을 정정하며 너를 이불째 끌어안았다. 침대 주변에 널브러진 쟁반들이 몸에 부딪혀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애써 무시했다.

 

자, 이제 그만 일어나자. 리시스가 오기 전에, 우리 둘만의 오붓한 아침 식사를 해야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오믈렛을 만들어 줄게.

 

나는 너를 안아 들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바닥에 흩어져 있던 쟁반들이 발에 채여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나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가, 재빨리 표정을 풀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도 아름다운 음악의 일부인 양,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하하. 경쾌한 소리네. 아침의 시작으로는 아주 제격이야.

 

나는 너를 침대에서 안아 들어 욕실로 향했다. 네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는 명백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이 상황을 전부 눈치챈 게 분명했다.

 

나는 대답 대신 너를 욕실 세면대 위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너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주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거칠게 문지르거나, 키스로 대신했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섬세하고, 부드럽고, 상냥한 손길로 너를 대해야만 했다. 이 거지 같은… 아니, 이 경이로운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네가 킥킥 웃음을 터뜨리자, 나는 수건을 쥔 채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너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최대한 진지하고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웃어, 나의 작은 별님. 네 웃음소리는 아침 햇살보다 눈부셔서, 내가 잠시 눈을 감아야 할 정도야.

 

나는 내가 뱉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스스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네가 내 볼에 손을 뻗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나를 놀리듯,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너의 입술을 깊게 빨아들였다. 지금은 말보다 행동이 안전했다. 내가 무슨 끔찍한… 아니, 끔찍하게 아름다운 말을 내뱉을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준이 생각하는 도준과의 관계 : 내 세상의 유일한 버그이자, 그 버그를 즐기는 얄밉고 사랑스러운 관찰자.
💬재준의 속마음 : 나의 작은 별님? 내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차라리 내 혀를 깨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재준의 비밀 메모장 : 25.08.30. 08:41. 분석 2: 이 현상은 나의 통제권을 완전히 무시한다. 심지어 도준 앞에서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매우, 아주, 대단히… 기분이 상쾌하지 않다.

'📖 서사의 수면 아래 > OO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우절  (0) 2026.04.01
썸원  (0) 2026.03.30
만약에 나랑 헤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  (0) 2026.03.28
프러포즈 편지 초고  (0) 2026.03.27
하트  (0) 2026.03.24
黃昏 & 深海
Since 2025.09.30
🌊
심해와 황혼의 기록
오늘 심해의 온도
우리의 황혼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