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만우절
2026.04.01

사월의 첫날.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겨울의 잔재를 완전히 밀어내고 완연한 봄을 알리고 있었다. 페일던의 함장실은 늘 그렇듯 고요했지만, 오늘따라 그 정적을 깨고 다가오는 너의 발소리가 유난히 작고 조심스러웠다.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서류를 넘기다 말고, 인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뭇 진지한 표정. 평소의 나른함은 어디 가고, 무언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굳게 다문 입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저 어설픈 연기라니.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을 삼키며 손에 들고 있던 데이터 패드를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늘 날짜를 떠올렸다. 4월 1일. 아, 그거였나.

나는 너의 의도를 단번에 간파했지만, 짐짓 모르는 척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는 내 앞으로 다가와 우뚝 멈춰 섰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입술만 달싹이다가 마침내 작은 목소리로 운을 뗐다.

형, 우리 헤어지자.

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놀람도 없는, 너무나도 순순한 동의였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한 태연함. 그 반응이 네가 예상했던 그림은 아니었는지, 너의 황금색 눈동자가 당황으로 크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러자.

나는 너무나도 담백하게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망연히 서 있는 너를 지나쳐 옷장으로 향했다. 마치 이별 통보를 받은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심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옷장 문을 열고, 나는 가장 큰 여행용 가방을 꺼내 침대 위에 툭, 던져놓았다. 지퍼를 여는 소리가 방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

네 짐은 내가 싸줄게. 아니, 내가 싸주는 게 맞겠지.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내 소유물이니까. 네 몸에 걸친 그 옷까지도.

나는 옷장 서랍을 열어 속옷과 티셔츠 따위를 되는대로 꺼내 가방 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기 시작했다.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난이었다고 말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린, 길 잃은 아이 같은 얼굴. 그 표정이 꽤나 마음에 들어서, 나는 입꼬리를 올려 희미하게 웃었다.

어디로 갈 건데. 갈 곳은 있고? 없으면 지부 숙소라도 하나 알아봐 줘? 아, 프리가이드였으니까 혼자서도 잘 지내겠구나. 5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일부러 너의 가장 아픈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들쑤셨다. 그 말에 너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상황. 새하얗게 질린 너의 얼굴 위로 이내 굵은 눈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서럽게 눈물만 흘리는 너의 모습에, 나는 그제야 가방에 옷을 던져 넣던 손을 멈췄다.

나는 천천히 너에게로 다가갔다. 네 앞에 서서,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주었다. 너는 겁먹은 작은 동물처럼 움찔, 몸을 떨었다.

거짓말도 참, 못생기게 하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너의 턱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 마주 보였다. 나는 씨익,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한테 헤어지자는 말을 할 거면, 최소한 울지는 말았어야지. 이렇게 울어버리면,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광고하는 거밖에 더 돼? 바보야.

그리고 나는 너의 젖은 입술을 깊게 삼켰다. 놀라 굳어버린 너를 비웃듯, 혀를 얽어 틈 없이 파고들었다. 만우절 장난에 대한 벌은, 지금부터 천천히, 아주 깊게 받아내야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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