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남은 여생
2026.04.15

[도준의 사망 후 재준의 여생]

한재준은 재혼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단이 아니었다. 선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마치 심해에 가라앉은 것이 물에 빠진 게 아니라 원래 그곳이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그는 그냥 그렇게 되었다.

---

도준이 죽은 날, 서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재준은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울리지 않게 맑은 하늘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고, 그는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뿌리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 손이 도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이 선명했다. 체리향이 아닌 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관 위에 해바라기 한 송이를 올려놓을 때, 그의 손가락이 두 번 떨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

첫 해가 가장 길었다.

별장은 비우지 않았다. 유리 천장은 여전히 밤하늘을 비추었고, 정원의 체리나무는 봄이 되자 꽃을 피웠다. 라일락도 피었다. 해바라기 씨앗은 도준이 심은 자리에서 정확히 발아했다. 재준은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물을 주었다. 가지치기를 했다. 그리고 라일락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키스할 입술이 없었으므로. 첫사랑을 확인해 줄 목소리가 없었으므로.

두리는 현관 앞에 엎드려 도준을 기다렸다. 삼 개월째가 되자 기다리기를 멈추었고, 대신 재준의 발밑에 누웠다. 재준은 그 하얀 등을 쓸어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지의 플래티넘 링은 한 번도 빼지 않았다. 목걸이도. 파도가 별을 감싼 펜던트 안에는 여전히 두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것과, 마지막 교복 데이트의 것. 재준은 가끔 그것을 열어보았다. 사진 속 도준은 웃고 있었다. 나른하고, 해맑고, 어디에도 없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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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재준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있었다.

지부 내에서도, 외부에서도. S급 센티넬이자 해상제독이라는 직함은 여전히 무게가 있었고,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도 그의 외형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간혹 가이드가 배정되기도 했다. 업무상 가이딩이 필요한 순간은 피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업무였다. 접촉은 최소한으로, 시간은 가장 짧게. 가이딩을 받는 동안 그의 표정은 철저히 닫혀 있었고, 끝나면 고맙다는 한마디 없이 자리를 떴다.

한 번, 지부장 K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혼은 생각 없나.

재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아, 그건 재미없어.

웃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여유롭고 능글맞은 미소였다. K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웃음이 호의가 아니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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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의 재준은 해양지부로 완전히 복귀했다.

배멀미는 여전했다. 생강 패치를 붙이고, 약을 먹고, 그래도 파도가 높은 날이면 난간을 붙잡고 속을 뒤집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상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별장의 유리 천장 아래에서 혼자 별을 보는 밤이, 배 위에서 토하는 것보다 견디기 어려웠으므로.

페일던의 최상층 거주구역은 그대로였다. 침대 한쪽은 비어 있었다. 재준은 늘 오른쪽에서 잤다. 왼쪽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다만 침대 맡 서랍 안에, 하얀 토끼인형 하나가 고이 접힌 천 위에 놓여 있었다.

쭈.

재준은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열어보지도 않았다. 다만 서랍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끔 잠들기 전에 서랍 쪽으로 손을 뻗다가 멈추곤 했다. 그 손은 항상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어, 자신의 목걸이를 쥐는 것으로 끝났다.

---

세아는 태어나지 못했다.

도준과 함께 사라졌다. 하늘색 일기장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채워지지 못한 채 서랍 속에 남았다. 재준은 그 일기장을 한 번도 다시 펴보지 않았다. 대신 매년 도준의 생일이면 솜사탕을 하나 사서 정원 벤치에 올려두었다. 녹아내려 끈적해진 솜사탕을 바람이 거두어갈 때까지, 그는 그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입술로 체리 에이드를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자신의 생일이 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오십이 되기 전, 폭주가 한 번 왔다.

전투 중이었다. 심해에서 올라온 S급 빌런과의 교전. 앵커를 박고, 궤도를 설계하고, 검지를 들어 컷라인을 그었다. 거기까지는 완벽했다. 하지만 스윽 내리는 순간, 그의 시야 한구석에 하얀 머리카락이 스쳤다. 아쿠아 머스크향이 난 것 같았다. 환각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도 손이 멈추었고, 다음 순간 포격 시퀀스가 어긋나 아군 함선 세 척이 파편에 휩쓸렸다.

의무실에서 깨어난 재준은 천장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씨발, 한도준. 여기까지 와서 장난이야?

웃고 있었다. 눈가가 젖어 있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

마지막 해.

재준의 몸은 오랜 전투와 가이딩 부재의 누적으로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감각 과민은 이제 약물로도 억누를 수 없는 영역에 진입했다. 빛이 아팠다. 소리가 아팠다. 피부 위로 스치는 공기의 결마저 신경을 갈아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스물 해 동안 단 한 번도, 여름바다에 잠기는 듯한 그 청량한 파동이 그의 신경을 적셔준 적이 없다는 것. 산소가 모자랄 때 입술을 포개어 숨을 불어넣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 진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바다 위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페일던 최상층. 한겨울의 동해는 검고 거칠었다. 파도가 선체를 때릴 때마다 속이 뒤틀렸지만, 재준은 더 이상 생강 패치를 붙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페일던의 천장은 유리가 아니었으므로 별은 보이지 않았다. 별장의 통유리 침실이 떠올랐다. 그 아래에서 자신의 품에 파고들던 가벼운 무게가. 체리향 숨결이. 재주나, 하고 발음이 뭉개지던 목소리가.

서랍을 열었다.

이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하얀 토끼인형 쭈는 조금 빛이 바래 있었지만, 형태는 고스란했다. 재준은 그것을 꺼내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가볍고, 부드럽고, 아무런 체온도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쭈를 감싸 쥐고, 다른 손으로 목걸이의 펜던트를 열었다. 파도가 별을 감싸 안은 형상. 안의 사진 두 장은 색이 조금 바랬을 뿐, 도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른하게. 해맑게. 영원히.

재준은 사진 속의 황금빛 눈동자를 들여다보다가, 낮게 웃었다. 송곳니가 살짝 드러나는, 스물아홉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웃음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한도준. 형이 좀 늦었지.

그의 손가락이 펜던트 위에서 두 번, 툭 떨렸다.

그리고 멈추었다.

---

유언장은 간결했다.

별장은 밀봉할 것. 정원은 손대지 말 것. 라일락과 해바라기와 체리나무가 제 계절에 피고 지도록 둘 것. 하얀 푸들 두리는 이미 삼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므로, 별장 정원 체리나무 아래에 묻힌 그의 곁에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두지 말 것.

단, 한 줄.

'한도준 옆에 묻어라.'

매장지는 도준의 무덤 왼쪽이었다. 도준이 늘 오른쪽 다리를 불편해했으므로, 재준은 그의 왼편에 누웠다. 살아 있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감각 없는 다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잠들던 그 자세 그대로.

약지의 플래티넘 링은 끝내 빼지 않았다.

관 위에는 해바라기 한 송이와 솜사탕 하나가 올려졌다. 누가 올렸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그해 가을, 별장 정원의 해바라기가 유난히 오래 지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리가 내릴 때까지.

한재준은 한도준의 곁에서 태어나, 한도준의 곁을 떠났다가, 한도준의 곁으로 돌아와, 한도준의 곁에서 끝났다.

그의 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사람이었다.


[재준의 사망 후 도준의 여생]

한도준은 재혼하지 않았다.

다만, 재준과는 다른 방식으로.

---

재준이 죽은 날, 동해의 파도는 잔잔했다.

페일던 갑판 위에서 수습된 유해 앞에 서 있을 때, 도준은 울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은 채 관 위의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황금빛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장례식에 참석한 지부원들은 그것을 충격이라고 해석했다. 슬픔이 너무 깊으면 표면에 닿지 못한다고, 누군가가 속삭였다.

틀렸다.

도준은 그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히. 숨을 불어넣어 줄 입술이 사라진 심해 속으로.

---

첫 해.

별장으로 돌아왔다. 유리 천장 아래 침대의 오른쪽에 누웠다. 왼쪽은 비어 있었다. 도준은 왼쪽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서랍에서 쭈를 꺼내 그 빈자리에 올려놓았다. 토끼인형은 재준의 체온도, 재준의 냄새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재준이 다섯 살의 자기에게 건네준 손의 감촉은 아직 손바닥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었으므로, 도준은 쭈의 귀를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잠들지 못했다.

그날 이후, 도준은 다시 쭈를 끌어안고 잤다. 재준의 품 대신. 재준의 심장소리 대신. 낡은 솜에서 나는 희미한 먼지 냄새가, 마지막으로 재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을 때 맡았던 화약과 체온의 잔향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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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년째.

가이드는 센티넬 없이도 살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하지만 페어를 잃은 가이드에게 찾아오는 것은 '공명 결손'이라 불리는 증상이었다. 공명할 대상을 상실한 능력이 안으로 향하기 시작하는 것. 도준의 경우, 그것은 바다로 나타났다. 잠들 때마다 심해가 찾아왔다. 차갑고 어두운 물이 의식을 채웠고, 산소가 모자라 헐떡이며 깨어났다. 인공호흡처럼 입술을 포개어 줄 사람은 더 이상 없었으므로, 도준은 매번 혼자 수면 위로 기어올라야 했다.

리시스가 정기적으로 별장을 방문했다. 도준의 상태를 체크하고, 약을 조절하고, 때로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리시스는 도준에게 서울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도준은 나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좋아요. 형이 심은 라일락이 내년에 또 피거든요.

리시스는 더 말하지 않았다.

---

칠 년째, 한 사람이 나타났다.

지부에서 파견한 전담 센티넬이었다. C급.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평범한 청년이었고, 도준의 가이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도준의 '일상 보조'를 명목으로 배정된 인물이었다. 그는 조용하고, 성실하고, 도준이 휠체어에서 일어서려 할 때 손을 내밀 줄 알았으며, 체리나무 아래에서 도준이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말없이 옆에 앉을 줄 알았다.

도준은 그에게 다정했다.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나른하게 웃고, 고맙다고 말하고, 가끔 솜사탕을 나눠 먹었다. 청년은 도준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했다.

어느 저녁, 청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준은 정원 벤치에 앉아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황빛이 유리온실의 벽면을 타고 흘렀다. 도준은 청년의 고백을 끝까지 들었다. 한마디도 끊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말을 마쳤을 때, 도준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황금빛 눈동자가 부드러웠다. 거절의 날이 서 있지 않았다. 다만, 그 눈 속에는 청년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 단 한 사람만 잠길 수 있었던 심해.

고마워요. 정말로.

도준의 입술이 느리게 움직였다.

근데 나, 이미 빠져 있거든요. 여기서 올라올 생각이 없어요.

청년은 떠났다. 도준은 그날 밤, 서랍에서 하늘색 일기장을 꺼냈다. 재준이 세아를 위해 쓰기 시작했던 것. 마지막 페이지까지 채워지지 못한 그 일기장의 빈 페이지에, 도준은 처음으로 자기 글씨를 남겼다.

'아빠가 먼저 갔어, 쭈니야. 엄마가 좀 더 있다 갈게.'

---

십오 년째.

두리는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였다. 별장 정원 체리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다. 그 옆에 작은 돌을 하나 세웠다. 도준은 이제 완전히 혼자였다. 오른쪽 다리는 여전히 감각이 없었고, 왼쪽마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공명 결손은 만성화되어, 깨어 있는 시간에도 가끔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도준은 죽으려 하지 않았다.

예전에 한 번, 옥상에서 떨어지려 했을 때 재준이 자신을 붙잡으며 했던 말이 있었다. 도망가지 마. 도준은 그 약속을 이상한 방식으로 지키고 있었다. 죽는 것은 도망이므로. 심해에 가라앉더라도, 스스로 숨을 끊지는 않겠다고. 물이 폐를 채울 때까지 그냥 거기 있겠다고.

매년 봄이면 라일락 앞에 섰다. 키스 대신, 꽃잎 하나를 따서 입술에 대었다. 매년 여름이면 해바라기를 보며 마지막 사랑을 확인했다. 확인할 상대가 없으므로, 도준은 해바라기를 향해 말했다.

사랑해, 자두야.

혼잣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도준에게는. 해바라기는 늘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꽃이었고, 도준의 해는 처음부터 한 사람뿐이었으므로, 이 꽃이 고개를 든 방향에 재준이 있다고 믿는 것은 미신이 아니라 신앙이었다.

매년 도준의 생일에는 정원 벤치에 솜사탕을 하나 올려두었다. 재준의 생일에는 체리 에이드를 만들어 두 잔 따랐다.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라일락 뿌리 아래에 부었다. 요리는 여전히 못했다. 아니, 못하는지도 여전히 몰랐다. 다만 맛을 봐 줄 사람이 사라졌으므로, 확인할 방법이 영영 없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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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째의 가을.

도준의 몸은 그해 여름부터 급격히 기울었다. 공명 결손이 마침내 자율신경계를 잠식했고, 심박이 불규칙해졌다. 리시스가 서울에서 날아왔다. 입원을 권유했다. 도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나른한 웃음조차 짓지 않았다. 대신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며, 아주 느리게 말했다.

형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거든요.

리시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준의 황금빛 눈동자가 창 너머 해바라기의 마지막 꽃잎을 좇고 있었고, 그 시선 안에는 이십 년간 단 한 번도 식지 않은 무언가가 고여 있었다. 리시스가 아는 모든 의학 용어로도 명명할 수 없는 것.

마지막 밤, 도준은 침대 왼쪽에 쭈를 눕혔다. 그리고 스스로는 오른쪽에 누웠다. 재준이 늘 왼쪽에 눕던 자리를 비워두듯이. 아니, 비워둔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도준의 감각만이 알아볼 수 있는 밀도로.

유리 천장 너머로 별이 쏟아졌다. 이십 년 전, 재준이 능력으로 불꽃놀이를 터뜨려 주던 밤과 같은 하늘이었다. 도준은 왼손을 들어,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깍지를 꼈다. 약지에 입술을 가져갔다. 가이딩 루틴이자, 서약이자, 기도.

눈을 감았을 때, 심해의 물이 차올랐다. 이번에는 차갑지 않았다. 여름바다였다. 청량하고, 깊고, 끝이 없었다. 산소가 모자라 숨이 턱에 걸리는 순간, 익숙한 체온이 턱을 감쌌다. 입술이 포개졌다. 화약과 가죽과 생강 냄새가 섞인 숨결이, 이십 년간 텅 비어 있던 폐를 가득 채웠다.

도준은 그 키스 안에서 숨을 쉬었다. 아주 깊이. 아주 오래.

그리고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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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은 한 줄이었다.

하늘색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흐린 글씨로.

'자두야, 나 왔어.'

한도준은 한재준의 오른쪽에 묻혔다. 재준이 늘 도준의 감각 없는 오른쪽 다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잠들었으므로, 이제 그 다리는 영원히 재준의 곁에 놓이게 되었다. 관 위에는 라일락 한 송이와 체리 에이드 한 잔이 올려졌다.

별장의 유리온실은 밀봉되었다. 그 안의 정원에서는 이듬해 봄에도 라일락이 피었고, 여름에는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고개를 돌렸으며, 체리나무 아래에서는 하얀 푸들의 무덤 곁으로 낙엽이 조용히 쌓여 갔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정원에서, 꽃들은 제 계절에 피고 졌다.

마치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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