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차원문이 닫힌 그 후.
2026.04.16

그 소식은 마치 바다 안개처럼, 예고 없이 스며들어 모든 것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차원 문이 닫혔다. 빌런이라 불리던 이세계의 침략자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찢어졌던 하늘은 상처 하나 없이 아물어 완벽한 푸른색을 되찾았다. 길고 지독했던 전쟁은 끝났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거리는 축제로 물들었으며, 희생자들의 이름은 영웅으로 역사에 새겨졌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을 의미했다. 센티넬과 가이드의 능력이 서서히 소멸하고 있다는 공식 발표. 세상을 구했던 특별한 힘은 이제 그 존재 이유를 잃고, 마치 밀물에 쓸려가는 모래성처럼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에 절망했다. [Fearless] 본부는 연일 회의와 논의로 소란스러웠지만, 나는 그 모든 소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나의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네가 있는 이곳이었으니까.

나는 페일던의 갑판 난간에 기댄 채, 노을에 물드는 동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빌런의 위협이 없는 바다는 그저 거대하고, 고요하며,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멀미를 유발하는 지긋지긋한 물웅덩이일 뿐이었다. 능력의 소멸. 그것은 내게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한때 손짓 한 번으로 함포 수십 문의 궤도를 그리고, 도시 하나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었던 감각이 날마다 무뎌져 갔다. 등 뒤에서 나를 따르던 중력 앵커의 무게감이 희미해지고, 손끝에서 느껴지던 힘의 맥동이 약해졌다. 해상제독 ‘제스테’는 죽어가고 있었다. 한재준만이 남겨지고 있었다.

나는 품 안에서 담배 대신, 네가 챙겨준 체리맛 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달콤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평범해진다는 것. 그것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한때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미래였다. 쇼맨십과 허세, 압도적인 힘으로 구축된 나의 세계.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게 될까. 너는, 그런 나를 여전히 사랑해 줄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함선 내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너를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 너는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네게는 이미 가이딩 능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너의 가이딩이 만들어내던 그 청량한 여름 바다의 감각, 내가 그토록 미치도록 갈망하고 때로는 증오했던 그 심해는 이제 내 감각 속에서 희미한 기억으로만 존재했다. 우리는 더 이상 센티넬과 가이드가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상처와 과거를 끌어안은, 한 남자와 한 남자일 뿐.

나는 너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난간에서 몸을 돌려, 천천히 너에게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제독의 군화가 아닌, 그저 한 남자의 발걸음이었다. 유리문이 스르륵 열리고, 나는 네 앞에 멈춰 서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너의 휠체어 팔걸이에 놓인 손, 그 위로 내 손을 겹쳐 잡았다. 너의 황금빛 눈동자가 의아함으로 흔들렸다.

바다,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너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전부 다 버리자. 제독이니, 센티넬이니 하는 것들. 다 필요 없어. 이제는 그냥, 너의 세상으로 돌아갈래. 한재준으로, 너의 남편으로.

나의 중력 앵커는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 세상의 유일한 중력은, 처음부터 너였으니까. 너라는 별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나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궤도였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일어서며, 우리가 함께할 새로운 시간을 향해 나아갔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타닥, 타닥.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는 요란하지 않고, 오히려 집 안의 고요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 한참 동안 그 소리를 들었다. 익숙한 평온함이었다. 더 이상 폭풍우 치는 바다의 포효도, 빌런의 비명도, 포격의 굉음도 없는 세상. 그저 비가 내리는 소리만이 가득한 아침.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곁에서 잠든 너의 숨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고르게 울렸다. 나는 네 뺨에 흘러내린 백발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곤히 잠든 얼굴은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소년 같았다. 나는 잠든 너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소리 나지 않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오늘,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정확히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제스테’와 그의 가이드가 아닌, 한재준과 한도준으로 시작한 첫날.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로 약속한 날. 내게는 그 어떤 기념일보다도 소중한 날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자, 현관 앞에 웅크리고 있던 두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주방으로 향했다. 능숙하게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아침을 준비했다. 더 이상 손끝에서 힘의 맥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칼을 쥔 손의 단단함과, 야채가 썰리는 감촉만이 현실이었다. 처음에는 허전함에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다. 힘과 함께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공허함.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곁에는 네가 있었다. 너는 불안해하는 나를 그저 말없이 안아주었고, 우리는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기나긴 밤들을 건넜다.

어느새 토스트가 노릇하게 구워지고, 베이컨 굽는 고소한 냄새가 주방을 채웠다. 나는 접시에 음식을 보기 좋게 담고, 갓 내린 커피와 네가 좋아하는 체리 에이드를 쟁반에 올렸다. 그리고 다시 2층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네가 막 잠에서 깬 듯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어? 좋은 아침.

나는 침대 옆 협탁에 쟁반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너는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나는 웃으며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너를 품에 안았다. 포근하고 익숙한 너의 체향이 가슴 가득 들어왔다. 어리광을 부리듯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는 너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알고 이렇게 어리광이야.

나는 장난스럽게 물으며 너의 뺨에 입을 맞췄다. 너는 내 품에서 고개만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황금빛 눈동자에 담긴 다정한 빛을 마주하자, 심장이 따스하게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너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너를 침대에 편히 기댈 수 있도록 바로 앉혀주었다. 그리고 네 무릎 위에 쟁반을 올려주었다.

자, 아침. 오늘은 특별히 내가 전부 만들었어. 맛있게 먹어, 한도준.

나는 너의 앞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의 빗줄기는 조금 더 굵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함께 아침을 먹었다. 포크와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서로의 숨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그 평범함이 주는 충만함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한때 전장을 지휘하며 수천의 포화를 내리꽂던 희열보다, 지금 너와 함께 포크를 부딪치며 나누는 이 아침 식사가 몇 배는 더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토스트를 오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옆모습을, 나는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힘이 사라진 한재준에게 남은 것은 오직 너 하나였고, 그것만으로도 나의 세상은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비 오는 거, 이제는 제법 괜찮네.

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너는 나를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소 하나가, 나의 모든 과거를 위로하고, 나의 모든 미래를 축복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식탁 너머로 너의 손을 잡았다. 너의 약지에 끼워진, 나와 같은 모양의 반지가 차갑게 닿았다. 나는 너의 손을 부드럽게 쓸며,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해. 오늘도, 어제보다 더.

❤️‍🔥재준이 생각하는 도준과의 관계 :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얻은, 유일하고 완벽한 세상.
💬재준의 속마음 : 이 평범함이 이렇게나 달콤한 것이었을 줄이야.
📱재준의 비밀 메모장 : 28.10.15. 08:40. 기록: 3년 전 오늘, 한도준이 이 집 현관을 넘으며 '이제 진짜 우리 집이네' 하고 웃었다. 그 웃음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재준의 오늘 할 일
- 한도준과 함께 3주년 기념일 보내기
- 저녁에는 도준이 좋아하는 케이크 사 오기

💐상호간의 약속 (1개) :
1. 평생 서로의 곁에서, 평범하게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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