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개빡침
2026.04.18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오후였다. 복도를 걷는 내 옆에서, 너는 새로 나온 디저트 맛에 대해 종알거리고 있었다. 햇살이 복도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너의 백발을 은빛으로 물들였다. 그 모습을 곁눈질하며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린 순간이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안면만 익숙한 센티넬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어이, 해상제독 나리. 오늘은 배 안 타시고 땅에 붙어 계십니까? 하긴, 파도 좀만 높아져도 뱃멀미로 반송된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해군 망신은 혼자 다 시키시는 것 같습니다.

조롱이 가득 담긴 목소리.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다. 늘 있는 일이었다. 내 자리를 탐내거나, 그저 내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류의 시비. 내 발포 버튼을 누르기엔 너무나도 가치가 없는, 지루한 소음. 내 관심은 오로지 내 옆에서 갑자기 조용해진 너에게 쏠려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 지루한 상황을 어떻게 넘길까, 속으로 계산하며 너를 돌아본 찰나였다.

…이 씨발 새끼가 지금 뭐라고 했냐?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그 험악하고 날것의 욕설이, 내 평생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 단어가, 내 옆의 작은 머리통에서 터져 나왔다는 사실을 뇌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네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잔뜩 찌푸린 미간, 으르렁거리듯 들썩이는 어깨, 바짝 날이 선 황금빛 눈동자는 처음 보는 맹수처럼 번뜩였다. 그 모습에 당황한 건 시비를 걸어온 놈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순간 모든 사고를 정지한 채, 경이로운 생명체를 관찰하듯 너를 쳐다봤다.

네가 한 걸음 앞으로 더 나아가려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너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아 내 품으로 당겼다.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몸짓이 제법 힘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나는 너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워워, 진정해. 내 강아지.

야, 놔! 기다려 봐! 저 새끼 내가 오늘 죽여버릴 거야! 너 이 새끼, 옥상으로 따라와! 아니, 훈련장으로 와! 내가 지부장님한테 말해서 일대일 훈련 잡아달라고 할 테니까! 각오해, 아주 갈기갈기 찢어줄 테니까!

캬악, 하고 고양이처럼 성을 내는 너의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큭, 하고 터진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서 복도를 울렸다. 시비를 걸었던 놈은 당황한 얼굴로 나와, 내 품에 안겨 씩씩거리는 너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놈에게 눈짓 한 번으로 ‘꺼져’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어깨를 흠칫 떨더니,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는 너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너의 뒷목에 얼굴을 묻자, 화가 나서 달아오른 뜨거운 체온과 함께 익숙한 아쿠아 머스크 향이 확 끼쳐왔다. 아, 씨발. 존나 귀여워. 방금까지 상대를 갈아 마실 듯이 으르렁대던 맹수는 어디 가고, 내 품에 안겨서 씩씩거리는 이 작은 생명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너를 들어 올려 안고는, 복도 가장 가까운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계단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너를 벽에 밀어붙이고 입을 맞췄다. 버둥거리는 너를 힘으로 제압하고, 씩씩거리느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네가 언제 그런 험한 말을 배웠는지, 누구에게 배운 건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네가 오직 나를 위해, 그 작은 몸으로 분노를 터뜨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모습이 어이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너의 입 안을 헤집고 나서야 입술을 떼었다. 붉어진 얼굴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너의 눈을 마주 보며, 나는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다시는 다른 놈 앞에서 그런 험한 말 쓰는 거 아니야. 그 예쁜 입으로는, 내 이름만 부르면 돼.

나는 다시 한번 너의 입술을 짧게 머금었다 떼며 덧붙였다.

그리고, 방금 그 모습. 존나게 마음에 들었어. 그러니까 상으로, 오늘 밤엔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재준이 생각하는 도준과의 관계 : 가끔은 내가 지켜줘야 하지만, 가끔은 나를 지키려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맹수.
💬재준의 속마음 : 씨발, 어디서 저런 귀여운 욕을 배워왔지? 화내는 모습마저 이렇게 꼴릴 일인가.
📱재준의 비밀 메모장 : 25.09.10. 14:32. 기록: 한도준 분노 3단계. 1. 욕설. 2. 으르렁거림. 3. 훈련장 소환. 다음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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