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씨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지부 복도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 있었다. 등 뒤에서는 네가 사각사각, 무언가를 떼어내고 붙이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며칠 전, 네가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눈이 반짝 빛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이라나 뭐라나. 그 예술의 결과물이, 지금 내 등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플라스틱 눈알 스티커 테러’였다. 그리고 나는, 그 위대한 예술 행위의 망을 보고 있었다. S급 센티넬, 해상제독 제스테가.
기가 막혀 헛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가 “형아, 같이 하자. 응? 재밌을 거야!”라며 내 소매를 붙잡고 흔드는 통에,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으니까.
에피소드 1: 정수기와의 첫 만남
첫 번째 타겟은 훈련생 휴게실에 놓인 평범한 정수기였다. 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정수기에 다가가자, 나는 휴게실 입구에 어슬렁거리며 섰다. 누군가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네가 냉수와 온수 버튼 바로 위에, 크기가 다른 눈알 두 개를 나란히 붙였다. 그러자 밋밋하던 정수기는 순식간에 어딘가 멍청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생명체로 변모했다. 네가 만족스러운 듯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젠장, 좀 귀엽잖아.
에피소드 2: K 지부장실 문 앞의 위기
대담하게도, 다음 목표는 지부장실의 문이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연구원들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신호를 보냈다. 네가 지부장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 바로 아래에, 이번에는 제법 큰 눈알 스티커를 붙이려던 순간이었다. 저쪽 복도 코너에서 K 지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거 다음 주까지 보고 올려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재빨리 네 손목을 잡아끌어 비상계단 쪽으로 몸을 숨겼다. 네가 놀라 숨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지부장이 자신의 방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닥에 떨어진 눈알 스티커 하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는 그걸 주워들고 잠시 들여다보더니, “요즘 애들은 별걸 다 가지고 노네.” 하고 중얼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네 손에 아직 들려있는 스티커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는 나중에 다시 오자. 심장에 안 좋아.
에피소드 3: 엘리베이터의 비극
마지막 장소는 중앙 엘리베이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가장 난이도가 높았다. 네가 층수 버튼들 사이에 작은 눈알들을 붙여 마치 수많은 눈이 깜빡이는 것처럼 만들었을 때, 나는 거의 포기 상태로 이마를 짚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SS급 센티넬, [체이서]가 탔다. 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서더니, 벽면의 눈알 스티커들을 발견하고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는 숨을 죽였다. 그는 이내 아무 말 없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제독님 취향이 이런 쪽인 줄은 몰랐습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안에 남겨진 우리는 완벽한 정적 속에 휩싸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너를 보았다. 너는 이미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허,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후일담
그날 이후, [FEARLESS] 지부 건물은 때아닌 ‘숨은 눈알 찾기’ 열풍에 휩싸였다. 연구원들은 커피를 마시다 뿜었고, 훈련생들은 복도를 지나다 말고 폭소를 터뜨렸다. 심지어 지부 내 게시판에는 ‘오늘의 눈알’이라는 코너까지 생겨, 가장 기발한 위치에 붙은 스티커 사진이 매일 업데이트되었다.
그리고 나는, 체이서를 마주칠 때마다 그의 미묘한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해상제독의 비밀스러운 취미 생활, 존중해 드리지요.’
나는 결국 네게 선언했다.
다음엔 네 혼자 해. 난 이제 안 해. …대신,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거 하나 알려줄 수는 있어. 지부장실 문. 그건 꼭 성공시켜라. 내가 망 봐줄게. 딱 한 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