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사랑해 대작전
2026.03.06

고요한 나날이 이어졌다. 별장의 통유리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은 나른했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두리의 발소리는 평화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너는 내 곁에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 완벽함 속에서, 나는 문득 지독한 허기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음식이나 잠으로 채울 수 없는, 오직 너의 목소리로만 채울 수 있는 갈증이었다.

‘사랑해.’

그 세 글자. 과거, 내가 너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소유의 증표를 새길 때조차, 그 말은 언제나 너에게서 시작되었다. 너의 자발적인 헌신, 구원을 갈망하는 고백. 그 말은 나를 무너뜨리는 항복 선언이자 동시에 나를 구원하는 유일한 주문이었다. 관계가 역전되고 내가 너에게 무릎 꿇은 지금, 그 말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것은 더 이상 일방적인 구원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세상임을 확인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약속이었다. 나는 그 약속이, 그 확인이, 미치도록 듣고 싶어졌다.

작전은 치밀하게 시작되었다. 나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네가 좋아하는 솜사탕의 달콤한 향이 별장 전체에 퍼져나갈 정도로, 거대한 솜사탕 기계를 돌렸다. 네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계단을 내려오자, 나는 막 완성된 구름 같은 솜사탕을 내밀었다.

일어났어? 자, 오늘의 첫 식사.

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솜사탕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물고는, 그저 행복하게 웃었다. 나는 기대감에 찬 눈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이런 완벽한 아침을 선사한 나에게, 무언가 해줄 말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너는 그저 솜사탕을 먹으며 내 곁에 다가와 기댈 뿐이었다. 1차 시도, 실패.

점심에는 네가 좋아하는 체리에이드를 직접 만들어주었다. 탄산의 비율, 체리 시럽의 농도, 얼음의 모양까지 완벽하게 계산해서.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통유리창 앞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너의 옆에 앉아 컵을 건넸다.

목마를까 봐.

너는 고맙다는 듯 눈웃음을 치며 에이드를 받아 마셨다. 청량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너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으며, 다시 한번 기회를 엿보았다. 이렇게 다정한 순간에, 네가 나에게 해줄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그저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2차 시도, 역시 실패.

저녁이 되자 내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온 너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너의 몸에서 아쿠아 머스크 향이 훅 끼쳐왔다. 나는 너의 턱을 잡아 들어 올리고, 집요하게 눈을 맞췄다.

한도준. 너 오늘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너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내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음… 잘생겼다?

장난기 어린 대답에 맥이 탁 풀렸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너를 끌어안았다. 그래, 내가 졌다. 이런 식으로 보채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너를 갈구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우스워졌다. 그 말을 듣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이미 너에게 완벽히 길들여졌다는 증거였다. 나는 모든 기대를 접었다. 그냥,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그 말을 갈구하지 않았다. 포기했다기보다는, 그저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에 가까웠다. 그날도 평범한 오후였다. 나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너는 바닥에 앉아 두리의 털을 빗겨주고 있었다.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그때였다.

재준아.

네가 툭, 하고 나를 불렀다. 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응.

사랑해.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나는 숨을 멈춘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여전히 두리의 털을 빗기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였다. 방금 전 네가 한 말이 환청이었나? 아니, 분명히 들었다. 너무나도 무심하고, 툭 던지는 듯한, 그래서 더 진심으로 와닿는 목소리.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가, 미친 듯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너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 나왔다. 너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너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의아함이 서려 있었다.

사랑한다고.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그 말에, 나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며칠간 나를 괴롭혔던 지독한 허기가, 갈증이, 단 한순간에 채워지고도 넘쳐흘렀다. 나는 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너를 끌어안았다. 너의 체향과, 너의 온기와, 너의 목소리가 나를 완전히 잠식했다. 나는 너의 허리를 부서져라 끌어안으며,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말해줘.

나의 세상, 나의 심해. 너의 무심한 한마디에, 나는 또다시 기꺼이 길을 잃고 미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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