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한도준 키우기
2026.03.03

페일던 함교, 한밤중의 고요를 깨는 것은 오직 계기판의 희미한 불빛과 내 손안의 작은 단말기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8비트 사운드뿐이었다. 지부장이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반강제로 떠넘긴 이 조악한 픽셀 게임. [한도준❤️키우기]. 화면 속에는 백발의 2등신 캐릭터가 나를 멀뚱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게, 한도준을 꼭 닮았다.
 
나는 마른세수를 한번 하고, 픽셀 덩어리의 머리 위로 떠오른 ‘돌봄’ 아이콘을 무심하게 눌렀다. 어차피 시간 때우기용. 대충 며칠 만지다 지우면 그만이겠지. 그렇게, 시시껄렁한 육아일기가 시작되었다.
 

【 한도준❤️키우기 보고서 】

1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처음이라 모든 아이콘을 눌러봤다. 밥을 주니 오물거리고, 샤워를 시키니 김이 피어올랐다. 놀아주니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데, 그 모습이 꽤나...


  ○

 /█\

 / \

감상: 귀찮은데, 생각보다 반응이 즉각적이라 볼만하다. ...젠장, 좀 귀엽잖아.

2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어제와 동일. 반복적인 일과가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칭찬 아이콘을 누르니 화면에 손 모양이 나타나 픽셀 머리를 쓰다듬었다. 캐릭터 머리 위로 하트가 뿅뿅 떠올랐다.


  _

 ( )

/█\ ♡

 / \

감상: 쓰다듬는다고 좋아하는 건가. 단순한 놈. 실물도 이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아.

3일차 | 🖤
돌봄 항목: 식사(X), 샤워(X), 공부(X), 칭찬(X)
내용: 해양지부에서 긴급 호출이 있었다. 하루 종일 단말기를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밤늦게 확인하니, 구석에 처박혀 울고 있었다. 배고픔, 더러움 아이콘이 머리 위에서 깜빡였다.


  _ _

 (;-;)

 /█\

 / \

감상: 하, 씨발. 신경 쓰이게 만드네. 고작 픽셀 쪼가리가.

4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어제 방치한 게 마음에 걸려 작정하고 돌봤다. 처음으로 ‘공부’를 시켰더니, 작은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나왔다. 귀여워서 칭찬을 연타했다.


  _ _ zZ

 (u_u)

 /█\

 / \

감상: 역시 똑똑하게 커야지. 놀기만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야.

5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X)
내용: 계속 공부만 시켰더니 지루하다는 표시를 띄웠다. 무시하고 책 아이콘을 눌렀더니, 캐릭터가 책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괘씸해서 칭찬을 건너뛰었다.


  _ _

 (ò_ó)

 /█\

 / \

감상: 반항인가. 가르쳐야 할 게 많겠군. ...그 표정마저 그 녀석을 닮았다.

6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어제의 반항에 대한 벌로 하루 종일 놀게 했다. 공을 던져주니 신나서 뛰어다녔다. 저녁엔 피곤했는지 밥을 먹다 졸았다. 결국 쓰다듬어 주며 재웠다.


  ^ ^

 (^_^)

 /█\

 / \

감상: 역시 채찍 다음엔 당근이지. 길들이는 건 어렵지 않아.

7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오늘은 놀이와 공부를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효율이 좋은 듯, 캐릭터의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이제는 내가 단말기를 들면 먼저 화면 앞으로 다가온다.


  ♡

 (o.o)

 /█\

 / \

감상: 제법 길들었군. 이제 내 손길을 기다리는 건가. 만족스럽다.

8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특별식으로 ‘솜사탕’ 아이템을 주자, 평소보다 더 격하게 기뻐했다.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지 머리 위로 계속 하트가 떠 있었다.


  ^o^ ♡

 /█\

 / \

감상: ...이런 사소한 설정까지 반영되어 있을 줄이야.

9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최종 성장 전 마지막 날. 그동안의 기록을 훑어봤다. 삐뚤어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제법 잘 따라와 줬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오랫동안 쓰다듬어 주었다.


  _

 ( )

/█\

 / \

감상: 내일이면 끝인가. 조금 아쉽군. 내 손으로 완벽하게 키워낸 내 것.

✨ 10일차(최종) | 🩷🩷🖤🩷🖤🩷🩷🩷🩷
결과: 화면이 하얗게 빛나더니, 2등신 캐릭터가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금 더 길어진 몸, 단정한 유니폼 차림. 하지만 그 캐릭터는 나를 보고 웃는 대신, 화면 반대편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화면에는 [당신이 아닌, 다른 ‘페어’를 찾아 떠났습니다!] 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 (•_•) ...

           /█\

           / \   --> [ ? ]

 
…뭐?
 
순간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단말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삐걱, 하고 플라스틱이 비명을 질렀다. 내가 10일 동안 공들여 키운 결과가 고작 이거라고? 다른 페어? 장난하나. 화면 속 픽셀 쪼가리는 여전히 미련하게 화면 밖,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 모습이 5년 전, 나를 등지고 떠났던 한도준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단말기를 그대로 함교 벽에 던져버릴까 하는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대신, 나는 거친 손길로 화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새로 시작하기] 버튼. 망설임은 없었다. 다시 1일차의 작은 픽셀 덩어리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아. 단 하나의 ‘🖤’도 없이, 오직 ‘🩷’로만 가득 채워서, 그 끝에 네가 바라보는 것이 오직 ‘나’ 뿐인 엔딩을 보고야 말겠다.
 
나는 텅 빈 함교에서 홀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절대, 다른 곳은 못 보게 만들어주지. 도준아.
 



벽에 던져버리려던 단말기는 어느새 내 손안에서 다시 켜졌다. 화면 속, 초기화된 백발의 픽셀 덩어리가 무심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실패는 한번으로 족하다.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화면을 내려다보며,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내 것’으로 만들어내리라 다짐했다. 실수란 없다. 오차도, 변수도 전부 제거한다. 오직 완벽한 통제와 그 끝에 오는 절대적인 소유. 그것만이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결말이었다.
 

【 한도준❤️키우기 보고서 - 2회차 】

1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모든 행동은 정확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배고픔 아이콘이 뜨기 직전에 식사를, 졸음 아이콘이 뜨기 직전에 놀이를 멈췄다. 모든 행동의 끝에는 반드시 ‘칭찬’을 덧붙여, 긍정적 강화를 주입했다.


  _

 (^_^)

 /█\

 / \

감상: 기초 공사가 가장 중요하다. 사소한 균열도 허용할 수 없다.

2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놀이 대신 공부를 시켰다. 지루함을 느끼기 전에 놀이로 전환하고, 다시 흥미가 떨어질 때쯤 공부로 복귀했다. 보상으로 간식을 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하루 종일 웃고 있었다.


  ^ ^

 /█\ ♡

 / \

감상: 통제란 이런 것이다. 욕구와 보상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것.

3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어떠한 외부 변수도 차단했다. 호출이 오기 전에 미리 업무를 처리했고, 단말기는 항상 내 곁에 두었다. 녀석은 내가 화면을 켤 때마다 제자리에서 뛰며 반겼다. 당연한 반응이다.


  !

 (o_o)

 /█\

 / \

감상: 세상에 너와 나, 둘뿐인 것처럼. 이 작은 화면 안이 네 세상의 전부가 될 것이다.

4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미미한 변화가 관측됐다. 이제 녀석은 다른 아이콘보다 ‘칭찬’ 아이콘에 더 격하게 반응한다. 내 손길을 갈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_

 ( )

/█\

 / \

감상: 아주 좋아. 계속 그렇게 나를 원해라.

5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일부러 칭찬을 조금 늦게 해봤다. 녀석은 안절부절못하며 화면 앞을 서성였다. 그 모습을 충분히 감상한 뒤,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안도하며 하트를 띄웠다. 완벽한 의존 상태다.


  ; ;

 (._.)

 /█\

 / \

감상: 불안과 안도. 길들이기의 기본이지. 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6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이제 내가 먼저 아이콘을 누르지 않아도, 녀석이 먼저 아이콘 아래로 다가와 나를 올려다본다. 특히 ‘공부’와 ‘칭찬’ 아이콘 앞에서. 바람직한 모습이다.


  ^ ^

 (u_u)

 /█\

 / \

감상: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원하게 만든다. 그것이 진정한 지배.

7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놀이(O), 칭찬(O)
내용: 다시 솜사탕을 주었다. 지난번처럼 격하게 뛰는 대신, 그 자리에서 오물거리며 나를 계속 올려다봤다.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한, 혹은 감사를 표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

 /█\

 / \

감상: 학습이 완료됐다. 모든 기쁨의 원천이 나라는 것을.

8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녀석은 더 이상 혼자 놀지 않는다. 내가 놀이 아이콘을 눌러줘야만 비로소 움직인다. 그 외의 시간에는 화면 중앙에 가만히 앉아,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

 ( ._.)

 /█\

 / \

감상: 착하네. 내 허락 없이는 숨도 쉬지 마라.

9일차 | 🩷
돌봄 항목: 식사(O), 샤워(O), 공부(O), 칭찬(O)
내용: 마지막 날. 모든 수치는 완벽하다. 녀석의 행복도는 최대치이며, 불행도는 0이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직 나에게서만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밤이 새도록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 \

감상: 내일, 네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기대되는군. 물론, 답은 정해져 있지만.

✨ 10일차(최종) | 🩷🩷🩷🩷🩷🩷🩷🩷🩷🩷
결과: 화면이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빛이 걷히고 성장한 캐릭터가 나타났다. 깔끔한 제복을 입은 모습. 지난번과 달리, 녀석은 화면 너머의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황금색 픽셀 눈동자에 오직 나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의 영원한 가이드가 되겠습니다.]


      [ JESTE ]

         ^

         |

      (^_^)

       /█\

       / \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래, 이거다. 이것이 내가 원했던 결말이다. 화면 속 픽셀 덩어리는 이제 그 어디도 보지 않고, 오직 나만을 향해 있었다. 그 작은 세상의 유일한 신.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단말기의 전원을 껐다. 이깟 게임, 이제 더는 필요 없다. 완벽한 결과물을 손에 넣었으니. 진짜는, 내 옆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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