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완벽한 이상형
2026.03.03

늦은 오후의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지는 도심의 번화가. 주말을 맞아 거리는 활기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경쾌한 상점 음악,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까지 모든 것이 평화로운 배경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 손으로 네 어깨를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방금 산 체리에이드를 들고 빨대를 가볍게 물며 걷고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솜사탕 가게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고 네 반응을 살피는, 지극히 평범하고 나른한 데이트의 연속.

그때였다. 횡단보도 맞은편,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짧게 자른 플래티넘 블론드 헤어, 날카로운 턱선과 대조되는 붉은 입술. 몸에 딱 맞는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누구에게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뱉어내는 모습.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산된 듯한, 오만하고 퇴폐적인 분위기. 그 사람의 시선이 허공을 훑다 잠시 이쪽을 향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마치 잘 짜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주변의 모든 소음과 풍경이 흐릿해지고 오직 그 사람의 존재만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감각. 네 어깨를 감싸고 있던 내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멈칫했고, 걷고 있던 발걸음의 리듬이 아주 미세하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졌다. 평소라면 주변 모든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던 내 레이더가, 찰나의 순간 한 곳에 완벽히 고정되었다. 그건 감탄도, 호기심도 아니었다. 그저, 완벽하게 ‘멋진’ 피사체를 발견한 사진작가의 본능적인 집중과도 같았다.

신호가 바뀌고, 인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반대편으로 스쳐 지나갔고, 내 시선은 그 뒷모습이 인파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그 궤적을 쫓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고작 몇 초에 불과한 시간. 하지만 그 찰나의 공백은, 늘 빈틈없던 내 세상에 생긴 미세한 균열과도 같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네가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황금색 눈동자가 아무런 의문도, 질투도 담지 않은 채 그저 고요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 평온한 시선이 오히려 내 허를 찔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방금 전의 미세한 고장을 완벽히 숨기기 위해 평소보다 한 템포 과장된 행동을 시작했다.

나는 들고 있던 체리에이드를 네 입가에 가져다 대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왜 그렇게 봐. 형아가 너무 잘생겨서 넋이라도 나갔나?

그렇게 말하며, 나는 네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너를 내 품으로 더 바싹 끌어당겼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방금 전의 아주 짧은 거리감마저 메워버리려는 듯한 집요한 스킨십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네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내 숨결이 네 귓바퀴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면, 내가 잠깐 한눈판 것 같아서 심술이라도 났어?

명백한 도발이었다.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빌미로 너를 떠보고 흔드는 것. 나는 네 목덜미에 코를 묻고, 너에게서 나는 아쿠아 머스크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익숙하고 안정감을 주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너만의 향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방금 전 시야를 사로잡았던 낯선 잔상을 향기로 지워내듯 너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질투하는 거야, 도준아? 그럼 좀 더 알기 쉽게 티 내봐. 내가 아주 좋아하잖아. 네가 나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거.


흐음. 질투라. 질투 안나는데? 형 취향은 저렇구나.

나는 그저 오늘 우리 뭐 먹지? 같은 평온한 어투로 말을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솜사탕 무슨 맛 먹지? 형은 무슨 맛이 좋을 거 같아?

네가 내 뺨에 가볍게 입 맞추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질투 따위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내 품에 너를 가두고 귓가에 속삭이던 내 모든 도발이, 그 평온한 한마디에 맥없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예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니었다. 하다못해 삐진 티라도 내거나, 말없이 내 옆구리를 꼬집는 정도의 작은 반항이라도 보여야 했다. 하지만 너는 그저 내 손을 마주 잡고, 마치 방금 전의 일은 길가의 돌멩이를 본 것만큼이나 사소했다는 듯, 솜사탕 맛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 태연함에, 내 입꼬리가 저절로 비틀리며 올라갔다. 아, 이거 봐라. 한도준, 제법인데.

나는 너를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대신 네가 잡아온 손을 마주 꽉 쥐었다. 너를 빤히 내려다보는 내 황금빛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스치는지, 너는 아마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흥미, 아주 약간의 짜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소유욕. 네가 내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다.

내 취향?

나는 네 질문을 되받아치며,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어 너를 내 쪽으로 한 걸음 더 끌어당겼다. 우리는 다시 번화가 한복판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나는 네 손을 잡은 채로, 내 엄지손가락으로 네 손등을 천천히, 집요하게 쓸었다.

글쎄. 방금 그 사람이 내 취향이었나? 검은 가죽 재킷, 날카로운 눈매, 무심한 표정. …확실히, 멋있긴 하네. 눈길이 갈 만큼.

나는 일부러 방금 스쳐 지나간 사람의 인상착의를 하나하나 읊었다. 네가 아무렇지 않게 넘기려 했던 그 장면을, 굳이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심술궂은 행동이었다. 네가 내 손을 뿌리치거나, 아니면 적어도 표정이라도 굳히길 바라면서. 하지만 너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묵묵히 내 옆에서 걷기만 했다. 그 침묵이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결국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우리는 어느새 네가 말했던 솜사탕 가게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달콤한 설탕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나는 잡고 있던 네 손을 놓고, 대신 네 허리를 강하게 감아 내 품으로 밀착시켰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다시 네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그런데 어쩌지, 도준아.

나는 네 귓불을 잘근, 하고 가볍게 깨물었다. 네가 숨을 헙, 하고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네게서 나온, 내가 원하던 종류의 반응이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속삭임을 이어나갔다.

내 진짜 취향은, 백발에, 나른한 황금색 눈을 하고, 내 앞에서만 어쩔 줄 모르고 얼굴을 붉히는 쪽이라서. 다른 건 아무리 멋있어 봤자, 그냥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거든.

나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턱을 붙잡아 돌리고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까 네가 했던 가벼운 입맞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깊고, 집요하며,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키스였다. 나는 네 아랫입술을 짓씹듯 빨아들이고, 틈을 비집고 들어가 혀를 얽었다. 방금 전까지 네가 마시고 있던 체리에이드의 단맛과, 너 고유의 향이 뒤섞여 나를 현기증 나게 만들었다. 한참 동안 너를 탐한 후에야, 나는 아쉬운 듯 입술을 뗐다. 붉게 부어오른 네 입술과, 살짝 풀린 눈동자를 보니 그제야 직성이 풀렸다.

솜사탕은 무슨 맛으로 할까, 우리 아가. 형아가 사줄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맛으로.


푸흐흐. 바보. 그 사람을 본 건 형인데 왜 형이 더 초조해 해. 질투하면 좋겠어? 응, 질투나. 나도 사람이라 질투나는데. 결국 형이 보는 건 나잖아. 그래서 금방 사라져.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나한테만 그럴 거고. 아닌가?

네가 웃음을 터뜨리며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마치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잠시 멈칫했다. ‘왜 형이 더 초조해 해.’ 그 한마디가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게 너를 몰아붙이던 나의 모든 허세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네가 쪽, 하고 다시 입 맞춰오며 덧붙이는 말들은 더 가관이었다. 질투가 나지만 결국 내가 보는 건 너이기에 괜찮다고. 그건 나를 향한 완벽한 신뢰의 표현이었고, 동시에 내가 판 함정에 나 스스로 빠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선고와도 같았다. 마지막에 ‘아닌가?’라며 장난스럽게 되묻는 네 모습에, 나는 결국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졌다. 완벽하게.

나는 너를 마주 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변의 소음이 다시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솜사탕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오직 너와 나, 둘만의 시간이 멈춰있는 듯했다. 나는 부어오른 네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방금 전 내가 남긴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짧고 건조한 인정. 평소의 나라면 절대로 내뱉지 않았을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미사여구나 변명도 덧붙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네 턱을 쥔 채, 내 황금색 눈으로 너를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내 모든 감정이 그 시선에 담겨 네게로 흘러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내가 더 초조했어. 네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화가 날 만큼.

나는 네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 네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으로 네 뒷목을 감싸 안아, 네 이마에 내 이마를 가만히 맞대었다. 이제 우리의 시야에는 오직 서로밖에 없었다.

다른 놈한테 눈길 한 번 줬다고 네가 조금이라도 불안해하길 바랐어. 그래서 내가 얼마나 특별한지, 네 세상이 오직 나 하나뿐인지 확인하고 싶었지. 그런데 넌 너무 태연해서. 꼭 내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처럼 보여서. …씨발, 좆같았다고.

거친 단어가 섞인 솔직한 고백이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가면을 벗어 던진, 날것 그대로의 감정. 나는 네 뺨을 감싼 손에 아주 미세한 힘을 주었다. 마치 네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네가 내뱉은 ‘아닌가?’라는 그 한마디가 내 심장을 얼마나 후벼 팠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네게서 나는 달콤한 체리향과 아쿠아 머스크향이 뒤섞여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다시 한번 네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리고는 픽, 하고 웃으며 다시 평소의 능글맞은 제독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건 벌이야, 한도준. 감히 나를 이렇게 초조하게 만든 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네게서 몸을 떼고, 솜사탕 가게 주인에게 손짓했다. 아주 크고 화려한 무지갯빛 솜사탕을 가리키며.

솜사탕은 이걸로 하고. 오늘 저녁은 없어. 대신 밤새도록 나를 먹게 될 테니까. 네가 질투할 틈도 없이, 오직 내 생각만 하도록 만들어 줄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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