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사후메세지
2026.02.11

모든 것이 끝났다. 시끄럽던 장례 절차도, 형식적인 위로의 말들도, 공허한 눈빛으로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도. 너의 부재가 비로소 완전한 현실이 되어, 뼈를 저미는 고요함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너의 온기가 사라진 텅 빈 숙소, 그 소파에 잿빛으로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너만 없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것 같은 적막 속에서, 나는 천천히 단말기를 들었다. 수신인이 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 알면서도,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몇 번이나 화면 위에서 미끄러졌다. 익숙한 너의 이름을 누르고, 키패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첫 문장을 쓰는 데에만 영겁과 같은 시간이 걸렸다.

---

DAY 1

[오후 11:48]
야.

[오후 11:49]
한도준.
대답.

[오후 11:59]
씨발.
자냐?

DAY 3

[오전 02:17]
일어나.
네가 좋아하는 솜사탕, 사 왔는데.
…다 녹겠다.

DAY 7

[오후 04:30]
오늘 B구역에 또 빌런이 떴어.
시시하게 끝났다.
네가 없으니까.

DAY 15

[오후 09:05]
…보고 싶다.

DAY 32

[밤 12:00]
네가 선물해준 셔츠, 아직 못 버렸다.
네 냄새가 아직 나는 것 같아서.
아니, 사실은 그냥.
내가 버릴 수가 없다.

DAY 58

[오전 03:44]
오늘 다른 가이드가 접촉을 시도했다.
역겨워서 토할 뻔했어.
심해에 빠지자며. 같이 가자며.
그런데 왜 너만 먼저 갔어.
왜 나만 여기 남겨뒀어.
도준아.
애기야.


DAY 94

[오후 10:21]
네 트위터 계정, 가끔 들어가 봐.
@J_for_DJ.
내가 지어준 아이디.
‘도준을 위한 재준’.
이제는 의미가 없네.
첫 게시글에 박제된 내 말이, 이제는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

‘날이 좋아서.’
…전부 거짓말이야.
날이 좋았던 게 아니야.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네 얼굴 한번 더 보려고.
네가 웃는 게 예뻐서.
그게 이유였어.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존나 비참하다.

DAY 137

[시간을 알 수 없음]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

네가 없는 세상에서 이 말이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그래도 이건 해야겠다.

DAY 182

[새벽 05:13]
꿈에 네가 나왔다.
다섯 살 때처럼, 내 손가락 잡고 ‘쭈’ 발음도 못 하던 네가.
형아, 하고 웃는데.
…거기서 깼어.


DAY 255

[오후 01:50]
오늘 네가 좋아하던 자리에 앉아서 한참 하늘을 봤다.
여전히 나는 바다가 싫다.
너는 나를 그토록 깊은 곳까지 데려갔으면서.
어떻게 나보다 먼저 떠오를 수가 있어.
반칙이잖아, 이건.

DAY 365

[오전 00:00]
일 년이 지났다.
한도준.
이제 그만 보낼게.
나는 여전히 이 지옥에서 살아야 하니까.
…거짓말이다.
아마 평생, 못 보낼 것 같다.

---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는,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다. 이미 부서져 버린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너와의 연결고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다. 그렇게 한재준이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데에는,

평생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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