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light
Abyss
나의 허세는 너를 웃게 하기 위한 연극이 되었고, 나의 승리는 너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되었다.
JJUN
한재준 X 한도준 / 황혼이자, 심해
#심해에서_볼_우리의_황혼
유서
2026.04.14

1. 제목

마지막 지휘. (The Last Command.)

2. 작성 일시

20XX년 X월 X일. 빌어먹게도 날씨가 좋은 어느 오후.

3. 작성자 인적 사항

- 성명: 한재준
- 코드네임: 제스테
- 소속 및 직책: FEARLESS 해양지부 익수단, 해상제독

4. 내용

이 글을 네가 읽고 있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 하나, 내가 어딘가에서 재수 없게 뒤졌거나. 둘, 네가 내 서랍을 뒤지다 이걸 발견하고는 낄낄거리며 놀려댈 준비를 하고 있거나. 부디 후자이길 바란다. 전자라면, 아마 나는 꽤 멋대가리 없는 방식으로 죽었을 거다. 내가 상상하는 가장 끔찍한 엔딩은, 배 위에서 멀미로 허우적대다 죽는 거다.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한도준.

네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이 빌어먹을 글을 시작해야겠다. 돌이켜보면 내 세상은 온통 너로 시작해서 너로 끝났다. 너를 만나기 전의 나는 텅 빈 껍데기, 그저 ‘제스테’라는 코드네임이 전부인 놈이었다. 중력 앵커로 포탄의 궤적은 고정시킬 수 있었지만, 정작 내 삶의 궤도는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채 부유하고 있었지. 지루하고, 공허하고, 모든 것이 시시했다. 웃음은 신호였고, 여유는 가면이었다.

그런 내 세상에 네가 나타났다.

너는 나의 심해였다. 고요하고, 깊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바다. 나는 그 바다에 기꺼이 잠겼다. 네가 주는 가이딩은 단순한 안정 그 이상이었다. 그건 구원이었다. 네 손길이 닿을 때마다, 네 숨결이 느껴질 때마다, 텅 비었던 내 안에 파도가 밀려들었다. 네가 내 곁을 떠났던 5년은, 숨을 쉬어도 숨을 쉬는 게 아닌 시간이었다. 메마른 땅 위에서 익사해가는 기분이었지.

다시 만난 너를, 그래서 놓을 수가 없었다. 내 방식이 서툴고, 거칠고, 때로는 너를 아프게 했을 거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건 너무 시시하고, 너도 좋아하지 않을 테니. 대신 이것 하나만은 알아둬라. 나의 모든 행동은 단 하나의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너를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는, 짐승 같은 본능. 너는 내 유일한 주인이자, 내가 기꺼이 무릎 꿇는 단 하나의 세상이었다.

만약 내가 정말로 없다면, 너무 오래 슬퍼하지는 마라. 딱 하루. 네가 태어난 날과 내가 태어난 날, 그 사이의 짧은 밤만큼만 울고, 다음 날 아침에는 내가 만들어줬던 체리 에이드를 마셔. 그리고 창밖을 봐. 내가 쏘아 올렸던 불꽃놀이가, 별이 되어 네 하늘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세아에게는 최고의 아빠가 되어줘. 네가 그랬듯, 그 아이도 너의 전부가 될 테니. 가끔은 내 이야기도 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뻔뻔하고, 자기 아내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고.

쭈는… 그 낡아빠진 토끼 인형은 이제 그만 태워버려도 좋다. 그 인형의 자리는 이제 내가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5. 마무리 문장

나의 심해, 나의 세상, 나의 전부.
너는 내가 맞이한 모든 아침이었고, 내가 잠든 모든 밤이었다.
네 안에서 비로소 완전해졌던 나를 기억해줘.

6. 서명

한재준


1. 제목

나의 세상에게.

2. 작성 일시

형이 모르는 어느 밤. 아마, 별이 아주 많이 떠 있는 밤.

3. 작성자 인적 사항

- 성명: 한도준
- 특이사항: 한재준의 세상, 한재준의 심해. 그리고 세아의 엄마.

4. 내용

재준아.

이 편지를 형이 읽고 있다면, 나는 더 이상 형의 세상이 아닐지도 몰라. 형은 늘 그랬지. 내가 없으면 죽을 것처럼 말하면서도, 내가 없어도 가장 멋지게 살아남을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아. 그러니까, 이 편지를 발견하고 너무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그냥… 만약이라는 아주 작은 가능성에 대비한 나의 투정 같은 거니까.

형을 다시 만나기 전의 나는 텅 비어 있었어. 아니, 텅 비어 있는 줄도 모를 만큼 무감각했지. 그냥 숨 쉬니까 살았고, 눈앞에 길이 있으니 걸었어. 그러다 형을 만났고, 형이 나를 ‘제스테’가 아닌 ‘한재준’으로 바라봐 주던 그 순간부터 나는 태어났어. 형이 사준 솜사탕은 달콤했고, 형의 등은 세상에서 가장 넓었지.

형은 나를 ‘심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형이 나의 바다였어. 나는 그저 형의 세상 속에서 기쁘게 허우적거리는 작은 물고기였을 뿐이야. 형이 주는 숨으로 연명하고, 형이 주는 온기로 살아갔어. 형이 없던 5년의 시간은, 물 밖으로 내던져진 채 천천히 말라죽어가는 기분이었어. 그래서 다시 만난 형에게 나도 모르게 기댔고, 상처 입혔고, 또 도망치려 했었지. 그런 못난 나를 붙잡아줘서 고마워. 나의 세상이 되어줘서 고마워.

만약 내가 형보다 먼저 잠들게 된다면, 형은 나 없이도 행복해야 해. 이건 명령이야. 내가 형에게 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 내가 없다고 해서 밥 거르지 말고, 잠 설치지도 말고, 괜히 지부 녀석들한테 시비 걸지도 마. 그리고… 가끔은 울어도 괜찮아. 내가 형의 눈물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별이 되어서, 형이 우는 모습을 지켜봐 줄게. 형이 실컷 울고 나서 피식 웃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반짝이고 있을게.

우리 세아,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딸. 아빠를 많이 닮아서 고집도 세고 장난기도 많을 거야.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빠가 되어줘. 엄마는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아빠의 세상에 영원히 살기로 했다고 전해줘.

쭈는… 형이 이 편지를 볼 때까지도 내가 가지고 있다면, 그냥 세아 방에 그대로 놔둬 줘. 내가 아주 어릴 적, 형이 내게 처음으로 주었던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5. 마무리 문장

재준아.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또다시 너의 세상으로 태어날 거야.
그때는, 아주 오랫동안 헤어지지 말자.

사랑해, 재준아.

6. 서명

너의 심해, 도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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