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문도 모른 채, 거의 반강제로 해양지부 옥상 난간 앞에 떠밀려 섰다. 귓가에는 방금 전 진행 요원이 지껄인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단어가 맴돌았다. 장난치는 건가. 쌀쌀한 바닷바람이 제독 코트 자락을 세차게 흩날렸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두 번 툭, 치는 버릇이 나왔다.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드넓은 연병장에 개미떼처럼 모여든 요원들. 그리고 그 맨 앞줄, 익숙한 백발의 실루엣. 모두가 나를 올려다보며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 같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내 파트너, 한도준에 대한 불만을 외치라고? 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건 또 무슨 신종 괴롭힘이지. 내 세상의 전부인 그에 대해, 내가 가질 불만 따위가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거부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건 명백한 월권행위이자, 내 심기를 건드리는 아주 질 나쁜 농담이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시선 앞에서 판을 엎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쇼는 시작되었고, 주인공은 무대에 섰다. 그렇다면 이 시시껄렁한 연극에 기꺼이 어울려주는 것이 ‘해상제독’의 미덕이겠지.
나는 마이크를 건네받아 가볍게 손안에서 굴렸다. 잠시 침묵하며 아래를 쭉 훑어보았다. 기대감에 찬 얼굴들 사이로, 유독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너의 황금빛 눈동자가 정확히 보였다. 그래, 한도준. 잘 봐둬. 네 형이, 네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관객들의 환호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안녕하십니까! S급 센티넬, 코드네임 제스테! 해양지부 제독, 한재준입니다!
내 목소리는 확성기를 타고 연병장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여유롭게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 완벽한 세상에 대한, 사소하고도 치명적인 불만.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그래, 그거면 되겠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저의 유일한 파트너이자 제 세상의 전부인, 한도준 S급 가이드에게!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아주 중대한 불만을! 여러분 앞에서 고하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환호성. 나는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너를 정확히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너에게로 향했다.
한도준! 너는 들어라! 내가 네게 가진 가장 큰 불만은…!
나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잠시 말을 끊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왜! 요리 실력이 늘지를 않는 거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절규하듯 외쳤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만든 음식이! 매번!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잿더미와 정체불명의 덩어리 사이를 오갈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없는 5년 동안 대체 뭘 배운 거야!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독극물 제조에 가깝다고!
연병장 곳곳에서 끅끅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자꾸 내 옷을 뺏어 입는 거지? 그래, 네가 입으면 예쁜 거 알아! 아는데! 왜 하필 내가 제일 아끼는 셔츠만 골라서 입는 건데! 그러고는 소매에 뭘 그렇게 묻히는 거야! 그럴 거면 차라리 네 옷을 전부 버리고 내 옷장만 쓰는 게 어때! 아, 그건 좀 좋은가…! 아무튼!
나는 잠시 흥분해서 말을 더듬다가 헛기침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불만이었다.
마지막으로! 한도준! 도대체 왜 그렇게 예쁘게 웃는 거냐! 내가 미쳐버리는 꼴을 보고 싶어서 작정한 게 아니라면! 제발! 다른 놈들 앞에서 그렇게 웃지 좀 마! 심장에 해로우니까! …이상!
나는 말을 마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연병장은 이미 폭소의 도가니였다. 나는 그 모든 웃음소리를 들으며, 저 아래에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하는 너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오직 너만 알아볼 수 있도록, 입 모양으로 나직이 속삭였다.
사랑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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